
공간과 감정: 나를 위로하는 환경 찾기
우리의 감정은 공간의 특성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둘러싼 외부 환경으로부터 감각 자극을 받고 있으며, 우리의 몸과 마음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신경학과 생물학 분야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감각 자극은 뇌의 특정 영역을 활성화하고 감정의 기초가 되는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한다.
공간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우선 나의 감정 상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을 때, 그에 적합한 대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 누구나 쉽게 감정를 측정할 수 있는 무드미터라는 도구가 유용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나는 무드미터에 대해 설명한 일이 있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이제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간’을 연출 할 수 있다. 무드 미터를 활용해 나의 감정을 확인한 뒤, 긍정적인 감정은 강조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완화하는 방향으로 공간과 감정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원리다. 만약 나의 감정이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태라면, 조금 어두운 조명으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차분한 환경을 만들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후각이나 촉감을 자극하는 요소들도 활용할 수 있다.
부정적 감정에서 긍정적 감정으로: 공간을 재구성하기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속에는 다양한 감각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자연광이 풍부한 공간은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의 분비를 촉진해 정신적 안정은 물론 수면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후각은 뇌와 직접 연결되는 원초적 감각으로, 향기나 냄새는 즉각적으로 감정 중추를 자극한다. 특히 라벤더 향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어 긴장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가 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각 신호는 C-촉각섬유를 통해 쾌락 중추와 연결되어 옥시토신 분비를 유도하며, 음악은 장르와 리듬에 따라 다양한 감정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을 '다중 감각(Multi Sensory)'이라고 한다. 이러한 다중 감각을 공간 설계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건축이 우리의 감정을 위로하고 회복하는 힘을 지닌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공간과 감정 관리의 궁극적 목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머무는 공간을 점검하는 일은 삶의 질을 높이는 첫걸음이다. 일상 속에서 감정을 단순한 느낌으로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감정은 마음에만 머물지 않고, 신체라는 물리적 영역에도 영향을 준다.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감각의 영역에 닿게 된다. 그리고 감각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무드미터는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에 기반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수치화하기 어려운 감정을 스스로 관찰하고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도구다. 이렇게 감정을 자각하고, 구체적인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면, 그 감정에 맞춰 감각 요소를 조화롭게 배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은 공간을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는 장소로 만들고,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 감정을 줄여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한다.
나는 삶의 질이 단지 외부 조건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과 외부 환경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고 믿는다. 공간을 통해 감정을 위로받고, 그 안에서 다시 힘을 얻어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는 것. 그것이 바로 AaRC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글쓴이 | 이원호 (AaRC | 대표 건축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