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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경험 (리사 펠드먼 배럿)

생성자
AaRC(아크)AaRC(아크)
카테고리
뇌과학
태그
감정
경험
설명
💃리사 펠드먼 배럿이 말하는 감정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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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의 「The Experience of Emotion」을 바탕으로, ‘감정의 경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글이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심리학과 신경과학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주제는 정서, 의식, 감정이다. 그녀는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석좌교수이자, 하버드 의대 법·뇌·행동센터의 수석 과학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과학자 중 한 명이다. 현재는 과학의 대중화에도 힘쓰며, 일반 대중이 감정과 뇌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넓힐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과 같은 다양한 감정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흔히 감정을 “뇌에서 일어나는 어떤 반응”이나 “몸의 생리적 변화”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감정은 주관적 느낌과 뇌의 활동이 서로 맞물려 일어나는 ‘다차원적 현상’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마음을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20세기 초,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깊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당시 과학은 주로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측정 가능한 객관적 데이터를 중심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학문이 바로 ‘행동주의(Behaviorism)’다.
행동주의자들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느끼는가”는 직접 측정할 수 없는 주관적인 영역이므로,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대신, 실험실에서 자극과 행동 반응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연구했다. 파블로프의 종소리에 맞춰 침을 흘리는 개 실험이나, 쥐에게 레버를 누르게 하여 보상이나 처벌을 받는 스키너의 실험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접근 방식은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지만, 인간의 복잡하고 내면적인 감정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감정은 여전히 과학이 완전히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감정, 뇌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협주곡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의 연구는 '생물학적 자연주의(Biological Naturalism)'라는 철학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다. 이 관점은 인간의 정신 상태(의식)가 뇌의 활동에서 비롯되지만, 특정한 정신 상태가 뇌의 특정 부위와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즉,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었다”는 객관적 사실과 “특정한 느낌을 주관적으로 경험한다”는 현상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배럿 교수는 감정을 뇌와 신체가 협력해 구성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분노라는 감정은 단순히 편도체 한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뇌 부위가 함께 작동하면서 '분노'라는 경험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감정은 뇌의 특정 부위에 국한되지 않고, 뇌 전체가함께 연주하는 하나의 협주곡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감정 경험의 두 가지 측면: 내용과 과정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을 이해하려면 감정의 두 가지 측면, 즉 내용과 과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용(content):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과 그 감정이 어떤 의미나 생각과 연결되는가
과정(process): 그 감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뇌와 신체에서 어떤 생물학적/신경학적 활동이 일어나는가
예를 들어, 같은 슬픔이라도 그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된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상실, 또 다른 사람은 현재의 외로움 또는 타인과의 갈등 속에서 슬픔을 느낀다. 이처럼 개인의 기억, 환경, 관계에 따라 감정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감정은 뇌와 몸이 끊임없이 정보를 해석하고 조합해 만들어낸 개별적이고 유동적인 경험이라는 점에서, 배럿은 감정을 구성된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감정의 형태: 내용의 측면에서

좋다 vs 싫다: 감정의 기본 ‘핵심 정서(Core Affect)

많은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은 가장 기본적으로 쾌(pleasant)와 불쾌(unpleasant)라는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핵심 정서(Core Affect)’라고 하며, "좋다 vs 싫다"라는 단순한 핵심 뼈대를 이룬다. 예를 들어, 태어난 아기들이 "편안하다 vs 불편하다"에 즉각 반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감정 경험으로 확장한다. 감정의 폭을 넓히는 요소로는 ‘각성’, ‘관계’, ‘상황’, ‘문화와 개인적 맥락’ 등이 있으며,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는 이를 감정 경험의 ‘내용’ 측면으로 구분한다.

차분한가? 들떠있는가?: 각성(Arousal)

‘각성(Arousal)’이란 같은 ‘불쾌함’이라도 긴장되고 두근거리는 불쾌감과 축 처지고 우울한 불쾌감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사람마다 신체의 반응이나 내적 느낌에 민감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성 수준도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

누구와 함께인가?: 관계(Relational)

감정은 혼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인물이나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 바로 관계(Relational)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내가 상황을 주도한다고 느끼면 기쁨과 자신감을 경험하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통제 당한다고 느끼면 불안이나 분노가 생기기 쉽다. 협력이나 공감은 따뜻함과 친밀감을, 소외나 거리감은 외로움과 서운함을 불러온다. 상대방과의 힘의 균형(지배–복종), 사회적 참여 여부(함께함–분리됨)가 감정의 관계적 내용을 결정 짓는다.

어떤 상황인가?: 상황(Situational)

관계적 요소가 타인과의 관계에 주목한다면, 상황(Situational)은 내가 처한 환경이나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이 일이 내 목표에 방해가 되는가?", "이 상황이 나에게 이익인가?", "내가 책임져야 하는가?"와 같은 인지적 평가를 통해 감정은 구체화된다. 새롭거나 예상치 못한 사건, 목표 달성의 가능성, 가치및 규범과의 일치 여부, 책임과 통제 가능성 등은 감정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감정은 문화·개인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심리학에서는 오랜 시간 감정을 평가하는 몇 가지 공통 차원(예: 유익–해로움, 목표 달성 가능성, 예측 가능성 등)을 제시해왔다. 이를 ‘평가 차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 ‘평가 차원’만으로는 감정 경험의 미묘한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 감정은 문화적, 개인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며, 기억, 상상, 신념, 과거 경험, 주변 사람들의 반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감정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감정의 흐름: 과정의 측면에서

감정을 이해하려면 ‘내용(content)’뿐 아니라 이를 만들어내는 뇌와 신체의 ‘과정(process)’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실제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면, "감정은 특정 뇌 부위에서만 발생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지 알 수 있다.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이처럼 감정을 만들어내는 뇌의 활동을 ‘신경 참조 공간(neural reference space)’이라 부른다. 이는 감정이 발생할 때, 함께 또는 연쇄적으로 활성화되는 다양한 뇌 영역들의 집합을 의미하며, 감정은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좋고 싫음을 만드는 뇌의 복측(ventral) 회로

기본적인 쾌·불쾌 감정은 주로 복내측 전전두피질(VMPFC), 안와전두피질(OFC), 편도체(Amygdala)가 서로 연결되어 형성된다.
  • 복내측 전전두피질(VMPFC) & 안와전두피질(OFC)
    • "이 자극이 나에게 중요한가?", "이 것은 보상인가 위협인가?" 와 같은 평가를 통해 기분의 좋고 싫음을 만들어낸다.
    • 심박수, 호흡 등 신체 상태도 조절하며 감정과 생리적 반응을 연결한다.
  • 편도체(Amygdala)
    • 전통적으로 ‘두려움’과 관련된 영역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보상·주의·학습 등 다양한 감정 과정에 관여한다.
    • 자극의 위험 여부를 빠르게 판단해 기본 감정 형성에 영향을 준다.
복측 회로가 주도하는 이런 ‘가치 평가’는 우리가 어떤 자극에 대해 신속하게 “좋다 vs 싫다”는 느낌을 갖게하며, 이후 더 복잡한 감정으로 확장되는 기초를 마련한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뇌의 배측(dorsal) 회로

우리가 “왜 화가 나는 거지?”, “이건 무슨 감정이지?”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구체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는 배내측 전전두피질(DMPFC), 전측 대상피질(ACC), 그리고 왼쪽 하부 전두피질(VLPFC)이 주요하게 관여합니다.
  • 배측 내측 전전두피질(DMPFC)
    • 자기 자신과 타인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고, 감정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관여한다.
    • "이 불쾌함은 분노" 또는 "이 설렘은 기쁨"처럼 감정 범주를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는 데 관여한다.
  • 전측 대상피질(ACC)
    • 감정의 변화를 의식적으로 감지하고, 과도한 반응을 조절한다.
    • 갈등 상황에서 감정을 억제하거나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 왼쪽 하부 전두피질(VLPFC)
    • 감정을 명확히 개념화하고 결정짓는 데 필요한 정보를 조직한다.
    • 특정 감정을 억제하거나 조절하며 ‘정서적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의 기능도 수행한다.
결국, 복측 회로가 기본적인 ‘좋다/ 싫다’라는 감정을 빠르게 형성하고, 배측 회로가 그 느낌에 개념과 의미를 덧붙여 분노, 슬픔, 기쁨과 같은 구체적인 감정을 완성한다. 이 두 회로가 협력하면서 감정은 뇌에서 구성되는 정교한 경험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감정이 중요한 이유

감정은 단순히 뇌의 한 부분이나 특정 이론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우리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다. "내가 느끼는 이 분노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라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단순한 뇌 반응이나 호르몬 변화만이 아니라 과거 경험, 상황에 대한 해석, 몸의 느낌 등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감정이란 '다양하고 풍부한 느낌(content)'과 이를 만들어내는 '뇌와 몸의 역동적인 작용(process)'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결과라고 강조한다. 앞으로 과학적 발견이 더해지면, 우리는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현명하게 다루는 방법까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기쁨, 슬픔, 두려움, 분노 같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이런 감정은 단순한 신경 반응을 넘어서, 의사 결정과 행동의 기반이 되고 타인과의 소통 수단이자,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세밀한 감정 체계를 발전시켰 왔을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감정이 생존과 환경 적응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려움은 위험한 상황에서 빠르게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기쁨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또,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와 같은 감정 표현은 상대방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감정은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고,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더 나아가 감정은 행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감정을 잘 조절하고 풍부하게 경험할 수록 삶의 의미가 깊어지고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반대로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조절하지 못하면,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기고 우울이나 불안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결국, 감정은 우리가 환경에 잘 대처하고, 타인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해주는 본질적인 ‘적응 도구’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을 '과정(process)'과 '내용(content)'이라는 두 축을 통해 설명하며,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역할을 하며, 개인이나 문화적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을 이해하고 삶을 더 깊이 있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는 일이다.
 

 
글쓴이 | 이원호 (AaRC | 대표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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