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는 뉴욕 대학교에서 감정에 대해 연구하는 신경학자이다. 그는 기존의 감정 이론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며, 감정을 정의하기 보다는 생존을 위한 신체 내부의 기능과 동기부여라는 관점에서 감정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내에는 「불안」, 「시냅스와 자아」,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같은 책이 출간되었으며, 이 글은 조지프 르두의 「Rethinking the Emotional Brain」을 참고해 작성했다.
감정에 대한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의 관점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는 감정이 신경 과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이지만, 여전히 명확한 정의나 합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행복하다”, “화가 난다”같은 다양한 감정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런 일상 언어를 과학 연구에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조지프 르두는 이런 이유로 감정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에 머물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인간과 동물이 도전과 기회를 감지하고 반응하여, 생존하도록 기능하는 생존 회로(Survival Circuits) 개념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생존 회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또는 느낌)에 대해 논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항상성: 생존 회로의 기원
우리 신체는 복잡한 시스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시스템들이 조화롭게 작동해야 생명을 지속할 수 있다. 뇌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이 신체 시스템을 조율해 주변 환경에 맞게 반응하고 생존을 돕는 것이다.
조지프 르두에 따르면, 생존 회로(Survival Circuits)는 매우 원시적인 매커니즘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 생물은 뇌가 없지만, 해로운 물질은 피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하며 항상성(Homeostasis) 유지 행동을 보인다. 단세포 생물이 다시 다세포 생물과 진핵생물로 진화하면서, 감각 수용기와 운동 기관, 중추 신경계가 분화되어 더 복잡하고 정교한 생존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진화한 생존 시스템은 동물의 뇌 크기나 구조와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박테리아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상태를 감지하고 유지하려는 항상성 유지가 생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생존 회로(Survival Circuits)
생존 회로는 인간과 동물이 일상에서 기회와 도전에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를 결정하는 뇌의 기본 시스템이다.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는 이를 “생명 유지에 필요한 행위들을 조율하는 뇌의 조직화된 기능”이라고 정의하며, 구체적으로 방어, 에너지 관리, 체액 균형, 체온 조절, 생식과 생존 등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생존 회로가 작동할 때
- 중추 신경조절 시스템과 말초 호르몬 시스템이 활성화 된다
-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아드레날린, 코르티솔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 교감 신경계가 작동하면서 몸은 위협에 대비해 경계 상태를 갖춘다
- 학습된 기억을 바탕으로 동기가 형성되고, 생리적 반응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 감정은 이러한 생리적 반응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생존 회로의 체내 매커니즘
생존 회로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와 체액을 공급하고 체온을 조절하며,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아 생식을 가능하도록 작동한다. 특정 위협이나 기회가 감지되면, 이 회로 중 하나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다른 활동은 억제된다. 동시에 뇌와 신체는 각성 상태가 되며, 학습하고 기억한다. 다시 말해, 생존 회로는 감각과 기억을 통합하여 상황에 맞는 생리적 반응과 행동을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생존 회로의 구성
(1) 방어 회로
위협적인 자극(큰 소리, 포식자 등)을 감지하면 편도체가 활성화 한다. 편도체는 교감 신경계를 자극해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고, 심박수를 높여 혈액을 근육으로 빠르게 보내 싸우거나 도망칠 준비를 한다. 이후 상황이 진정되면 부교감신경계가 작동해 긴장을 풀고 몸을 안정시킨다.
(2) 에너지 조절 회로
배고픔을 느끼면 시상하부가 혈중 포도당 감소를 인지하고, 먹이를 찾도록 그렐린 등의 호르몬을 분비한다. 음식 섭취는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해 쾌감을 유도하고, 이로 인해 섭취 행동을 반복한다.
(3) 체액 균형과 체온 조절 회로
갈증은 뇌가 혈중 염분 농도와 수분 상태를 감지해 물을 마시도록 유도한다. 체온이 높아지면 땀이 분비되어 열을 방출한다. 반대로 체온이 낮아지면 근육이 떨려 열을 생성하고 피부 혈관을 수축해 열 손실을 줄인다.
(4) 생식 회로
환경과 신체 조건이 적절할 때, 시상하부의 생식샘자극 호르몬 방출 호르몬(GnRH)이 뇌하수체를 자극한다. 이로 인해 테스토스테론·에스트로겐이 분비되고 생식 활동이 촉진됩니다. 이 과정에서 도파민 시스템은 쾌감을 부여해 행동을 강화한다.
(5) 각성과 보상 회로
위험 신호는 교감 신경계를 활성화해 즉각적인 대응을 유도하고, 보상 신호는 도파민 분비를 통해 쾌감을 준다. 세로토닌은 감정의 안정을 유지하고, 옥시토신은 사회적 유대와 신뢰를 강화해 보상의 긍정적 효과를 높인다.
감정: 생존 회로의 ‘해석’ 결과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는 생존 회로가 기쁨, 슬픔, 두려움 같은 ‘감정’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감정은 오히려 ‘내면을 돌아보며 정의하는 주관적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방어 회로가 활성화되면 심박수 증가, 근육 긴장 → 뇌는 생리 변화를 두려움이나 분노로 해석
에너지 관리 회로는 배고픔·포만감 → 만족감, 기쁨, 안도감 등 다양한 주관적 느낌을 유발
이러한 감정이나 느낌은 생존 회로가 행동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것일 뿐, 생존 회로 자체가 감정의 정체성을 전부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의 행동은 공격, 굶주림 극복, 짝짓기 경쟁 등 다양한 목적에 따라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분노=공격”처럼 감정을 하나의 틀로 단정 짓기는 몹시 어렵다.
감정 연구의 어려움과 새로운 제안
감정 연구가 복잡한 이유에 대해 조지프 르두는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 감정과 느낌은 직접 측정하기 어렵고, 주관적인 보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 죄책감, 질투, 자부심처럼 고차원적인 감정도 존재하며, 생존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 감정에는 촉감처럼 단순한 감각적 요소까지 섞여 있어, 하나의 정의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조지프 르두는 “감정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정의 논쟁에 빠지기보다, 인간이 어떻게 도전과 기회를 받아들이고 행동하며 적응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생존 회로 개념을 활용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을 진화적 배경과 생리적 작동 원리를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의 생존 회로(Survival Circuits) 개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이 뇌와 신체의 기본 생존 메커니즘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두려움, 분노, 기쁨, 슬픔같은 감정은 사실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작동하는 생리적 시스템의 결과이며, 그 이후에 이루어지는 주관적 해석의 산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감정을 과학적으로 엄격하게 정의하거나 분류하려는 시도보다는,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생존을 위해 선택하고, 학습하며 적응해 나가는지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감정 연구를 더 풍부하고 유익하게 만든다. 감정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실체라기보다, 몸의 다양한 생존 전략과 진화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복합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감정이란, 생존 회로가 만들어내는 여러 반응을 우리가 ‘주관적으로 묘사’하는 결과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감정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며, 감정이 행동과 의사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글쓴이 | 이원호 (AaRC | 대표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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