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RC 로고

고양이의 감각으로 설계하는 행복한 공존 환경

생성자
AaRC(아크)AaRC(아크)
카테고리
건축
태그
고양이
감각
공존
설명
고양이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notion image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덕분에 고양이의 작은 몸짓과 눈빛 하나하나에 담긴 의중을 자주 살피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가 살아가는 환경은 모두 인간을 위해 설계되었는데, 우리 고양이는 어떤 느낌을 받고 있을까?
 

시각: 빛과 어둠의 균형이 중요

고양이는 뛰어난 야간 시력을 가진 동물이다. 망막에 빛을 감지하는 간상세포(rods) 비율이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cones)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이로 인해 1/6럭스(lux) 이하의 매우 낮은 조도 환경에서도 사물을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다. 1럭스는 1m x 1m의 공간에 촛불 하나의 빛이 균일하게 도달하는 정도이다. 시야를 유지할 수 있다. 망막 뒤에는 ‘타페텀 루시덤 (tapetum lucidum)’이라고 불리는 반사판이 있어 빛을 한 번 더 반사해 망막의 민감도를 높인다. 어두운 곳에서 찍은 사진에서 고양이의 눈이 빛나는 이유이다.
고양이의 색 인지 능력은 사람과 다르다. ‘적록 색약’이기 때문에 붉은색 계열은 회색으로 인식하며, 파랑과 노랑 계열만 부분적으로 구별한다.
따라서 고양이가 시각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눈부신 환경은 피하고, 조명은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스탠드 조명의 경우 사람의 시선보다 낮은 곳에서 바닥을 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양이 입장에서는 모두 자신의 시선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고양이는 햇볕을 쬐는 행동, 즉 일광욕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고 기분을 안정 시키기 때문에 고양이의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상반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청각: 조용한 환경 조성

고양이가는 45Hz에서 최대 60,000Hz 범위의 가청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사람이 20Hz에서 최대 20,000Hz, 개의 경우 65Hz ~ 45,000Hz이다. 소리는 보통 멀어질수록 주파수가 낮아지므로 저주파 영역의 소리를 잘 감지할 수록 청각이 예민하다고 할 수 있다. 지진이나 폭풍 같은 환경변화에 새들이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도 저주파 영역의 소리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고주파 영역을 듣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고주파 영역의 소리는 사람보다 최대 4배에서 6배 먼 거리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고주파 영역으로 갈 수록 소리의 해상력이 높아지는데, 소리를 통해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반향정위’와 같은 공간 감각에 유리하다. 참고로 캔을 따는 소리나 사료 봉지를 부스럭 거리는 소리 모두 고주파 영역에 속한다. 귀의 외이도(canal)와 함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외이개(pinna)는 음원의 위치를 정확히 식별하는데 도움을 준다.
집 안의 전자 제품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소리는 고양이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냉장고의 콤프레셔 작동음이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소음처럼 인간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에도 고양이는 거슬릴 수 있다. 따라서 생활 공간은 최대한 조용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으며, 외출 시 고양이가 외로울까 봐 음악을 틀어두는 일은 지양하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가전 제품의 전원은 꺼두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후각: 익숙한 냄새가 포인트

고양이의 후각 수용체는 약 2억 개로, 인간의 약 14배에 달할 정도로 매우 발달해 있다. 후각상피(olfactory epithelium)와 보머노잘 기관(Vomeronasal organ)은 특히 페로몬을 감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뛰어난 후각 능력 때문에, 화학적인 향이 강한 탈취제나 방향제를 사용할 경우 고양이의 상기도를 자극하여 식욕 부진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고양이는 자신의 체취가 남아 있는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따라서 이사를 하거나 목욕을 한 후에는 불안하거나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이럴 때는 고양이 페로몬 제품을 활용하면 환경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고양이 화장실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악취가 심할 경우, 고양이가 화장실 사용을 꺼리고 다른 곳에 실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촉각: 안전한 공간을 위한 배려 필요

고양이의 피부 표면에는 진모수용체(mechanoreceptors)가 분포하여 다양한 촉각 자극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진모수용체는 압력, 접촉, 진동 등 물리적인 자극을 신경 신호로 변환하는 감각 수용체이다. 이 중에 마이스너 소체(Meissner’s corpuscles)는 가벼운 접촉이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는 데 특화된 감각 수용체인데, 주로 발바닥과 얼굴 특히 코와 수염 같은 입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진모수용체는 사냥 중 먹잇감의 미세한 움직임을 진동을 통해 포착하거나 주변 물체와의 접촉을 통해 공간을 인식하는 역할을 하며, 집사의 부드러운 손길이나 다른 고양이의 그루밍 같은 가벼운 접촉을 통해 상호작용 하는 데에도 관여한다.
특히 고양이의 수염은 단순한 털이 아닌 촉각수염(vibrissae)이다. 이 수염은 피부 깊은 층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빠른 진동과 공기 흐름을 감지하는 파치니 소체(Pacinian corpuscles) 같은 압각 수용체가 밀집해 있다. 정교한 구조 덕분에 고양이는 시야가 제한된 환경에서도 주변 물체의 존재나 방향, 심지어는 공기의 미세한 흐름까지 감지하여 안전하에 이동할 수 있다.
따라서 고양이가 밥을 먹을 때, 수염이 벽이나 그릇에 닿아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며 너무 날카로운 빗의 사용과 강한 빗질은 지양한다.
 

미각: 후각이 더 중요

흥미롭게도 고양이는 단맛 수용체가 없다. 단맛을 감지할 수 있는 T1R2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T1R2 유전자는 T1R3과 짝을 이루어 포유류에서 단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를 만들어 내는데, 고양이는 유전자가 누락되어 있어 설탕이나 포도당 같은 당류의 맛을 감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고양이는 음식의 맛 보다는 냄새나 식감에 훨씬 크게 반응한다. 이는 고양이가 육식 동물로서 단백질과 지방을 주로 섭취하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사료나 간식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기호성에 대해 자주 언급된다. 인터넷에서는 고양이의 사료나 간식을 직접 맛 보았다는 집사들의 고백을 마주치기도 한다. 하지만 고양이와 사람의 미감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양이의 기호에 중요한 것은 향과 식감이다. 그리고 습식사료를 여러번 나누어 주는 경우가 많은데, 개봉 한지 몇 시간 지난 밥을 거부하는 일이 빈번한 것을 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선함 같다.
 

행동: 수직 공간과 스크래칭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높은 곳을 선호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주변을 조망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 위한 본능에 가깝다. 수의학 연구에 따르면, 높은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고양이가 코르티솔 수치도 낮고 스트레스 반응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캣타워나 벽면 선반 등을 활용해 천장 부근까지 오를 수 있는 수직 공간(vertical territory)을 확보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스크래칭은 발톱 관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고양이가 발톱을 긁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통해 발바닥에서 나오는 페로몬을 남겨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수직형과 수평형 등 스크래처를 집안 곳곳에 배치하여 고양이에게 스크래칭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집 안 가구들의 파손을 예방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나의 고양이는 높은 곳에 잘 오르지 못한다. 소뇌가 작게 태어나 운동 신경이 나쁘기 때문이다. 소뇌의 기능은 운동 조절과 균형 유지이다. 단순히 움직이는 것 뿐만 아니라 신체의 각 부분이 정확하고 부드럽게 협응하도록 돕는 것이다. 직접 올라갈 수는 없지만 창가 높은 곳에 자리를 만들어 놓아주고 있다. 그러면 한동안 창 밖도 보고 일광욕을 즐기다 내려온다. 반면 스크래칭은 곧잘 하는 편이다.
고양이의 감각과 본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공존하는 생활의 첫걸음이다. 우리가 고양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 이원호 (AaRC | 대표 건축가)

댓글

guest